오늘날 도시의 밤거리는 전기로 가득한 빛의 물결 속에 살아 숨 쉬고 있다. 거리는 자동 점등되는 LED 가로등으로 밝게 비추어지고, 도심은 낮과 크게 다르지 않은 풍경을 유지한다. 하지만 전기가 아직 세상의 모든 구석에 도달하지 못했던 시절, 도시의 어둠을 걷어내는 일은 사람의 손으로 이루어졌다. 우리는 그들을 ‘등롱지기’라 불렀다. 이들은 밤이 오기 전 거리마다 놓인 등불을 하나씩 밝혔고, 새벽이 밝기 전 다시 꺼야 했다. 불이라는 생명으로 도시를 깨우던 마지막 인간 가로등, 등록지기의 밤을 통해 사라진 직업 속 삶의 기록을 복원해보고자 한다.
불을 들고 도시를 걷는 사람
등롱지기는 단순히 불을 켜는 사람이 아니었다. 이들은 도시의 시간을 관리하는 사람이었으며, 거리의 안전을 유지하는 보이지 않는 파수꾼이기도 했다. 초창기 도시 조명은 대부분 오일 램프나 가스등에 의존했기 때문에, 등롱지기는 매일 직접 가로등마다 불을 붙이고, 램프의 기름을 채우고, 심지를 정리하는 일을 반복해야 했다. 가로등 하나하나를 점검하며 거리를 누비는 이들의 하루는, 사실상 밤의 도시를 운영하는 시간표와 같았다.
기계가 아니라 손이 켜던 빛
지금은 센서와 스위치로 불이 들어오지만, 19세기와 20세기 초 도시에서는 모든 빛이 사람의 손에서 시작되었다. 등롱지기는 손에 긴 점화봉을 들고 거리를 오르내리며, 높게 매달린 램프에 불을 붙였다. 날씨가 궂거나 바람이 세게 불 때도, 그는 걸음을 멈추지 않았다. 특히 겨울철 바람 속에서의 불 붙이기는 단순한 반복 노동이 아니라 일종의 기술이었으며, 빛을 유지하는 끈기는 등록지기의 생존 능력과 직결되었다.
도시마다 달랐던 등록지기의 방식
국가와 도시마다 등록지기의 방식은 조금씩 달랐다. 유럽 일부 도시는 가스관이 거리 아래에 매설되어 있어 가스등을 직접 켜야 했고, 동양의 도시들에서는 오일램프나 초롱을 사용하는 경우가 많았다. 어떤 도시에서는 등록지기가 정해진 구역을 혼자 책임졌고, 다른 곳에서는 2인 1조로 움직이며 조를 이루기도 했다. 이 직업이 단순한 기술직이 아닌, 신뢰와 시간 엄수가 요구되는 책임직이었던 이유다.
어둠이 두려웠던 시대의 안전망
전기가 없던 시절, 밤은 지금보다 훨씬 더 깊고 위협적인 존재였다. 등불이 꺼진 거리는 곧 범죄와 사고의 위험을 의미했다. 그래서 등롱지기는 단지 불을 밝히는 사람이라기보다, 지역 공동체의 밤을 지켜주는 존재였다. 거리의 어둠을 걷어내며 시민의 불안을 잠재운 이들의 손끝은, 빛을 켠 동시에 안심도 전달하는 역할을 했다.
전기 가로등의 등장과 조용한 퇴장
20세기 초반, 전기 가로등이 도시 전역에 설치되면서 등록지기의 필요성은 점차 사라졌다. 그들은 대체되었고, 대부분은 다른 직종으로 옮겨가거나 도시를 떠났다. 기계는 불을 일정한 시간에 자동으로 켰고, 인건비도 들지 않았다. 하지만 전기가 도시를 완전히 밝히기까지 수십 년이 걸렸으며, 일부 지역에서는 등록지기가 한동안 병존하는 형태로 남기도 했다. 그들의 조용한 퇴장은 시대의 흐름 속에 묻혀버렸지만, 등록지기의 흔적은 여전히 오래된 골목길의 가스등이나 복원된 박물관 속에서 찾아볼 수 있다.
빛과 인간이 공존했던 마지막 시대
등롱지기는 도시와 밤, 그리고 인간이 만들어낸 마지막 ‘공존형’ 빛의 기록이다. 불은 그 자체로 위험한 것이었기에 이를 다루는 사람은 신중하고 성실해야 했다. 오늘날 우리는 어둠이 오면 자동으로 켜지는 조명에 익숙해졌지만, 빛이 사람의 손끝에서 피어나던 시절에는 모든 빛이 의미를 가졌다. 등록지기의 불은 단지 공간을 밝히는 것이 아니라, 공동체의 안전과 삶을 지켜주는 작은 등대와 같았다.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등록지기의 정신
우리는 오늘도 밤이 되면 자연스럽게 가로등 아래를 걷는다. 그 편안함의 이면에는 수백 년 전, 손으로 불을 켜던 이들의 노력과 헌신이 있었다. 등록지기의 존재는 단지 과거의 직업이 아니라, 인간이 기술을 통해 어떻게 공동체의 삶을 밝혀왔는지를 보여주는 한 페이지다. 이 사라진 직업을 통해 우리는 기술이 아닌 사람의 손끝에서 출발한 빛의 의미를 다시 떠올릴 수 있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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