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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미국,일본의 야구 응원문화

미국 야구장에는 왜 북이나 나팔이 없을까?

by onlyhope2025 2025. 4. 10.

 

 

미국 야구장을 처음 찾은 사람이라면 한 가지 의문을 갖게 된다. 경기장은 수만 명의 관중으로 가득하지만, 북소리도, 나팔 소리도 들리지 않는다. 한국이나 일본 야구장에서는 흔히 볼 수 있는 단체 응원, 치어리더, 리드보컬 응원단이 미국 야구장에는 거의 존재하지 않는다. 응원석에서 북을 치거나 나팔을 부는 문화는 왜 미국에서는 자리잡지 못했을까? 이 질문은 단순히 야구 응원의 방식이 다르다는 것 이상의, 문화적, 역사적 배경이 숨어 있는 흥미로운 주제다.

1. 미국 야구 응원의 ‘개인 중심성’

미국 야구 응원 문화의 핵심은 ‘자유로움’이다. 팬은 각자의 자리에서 각자만의 방식으로 경기를 즐긴다. 박수를 치거나, 특정 순간에 함성을 지르거나, 또는 가족과 조용히 이야기를 나누며 야구를 감상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단체 행동이나 일사불란한 구호는 거의 존재하지 않는다. 이처럼 개인의 선택을 존중하는 응원 방식은 북이나 나팔처럼 일괄적으로 분위기를 몰아가는 도구와는 거리가 있다.

2. 역사 속에 뿌리내린 ‘관람 스포츠’로서의 야구

미국에서 야구는 처음부터 ‘관람형 스포츠’로 자리 잡았다. 19세기 후반부터 미국 야구는 가족 단위 관람 문화를 중심으로 발전했으며, 조용히 경기를 분석하고 음식을 먹으며 경기를 즐기는 방식이 자연스럽게 정착되었다. 관중이 경기장 내에서 하나의 ‘공연팀’처럼 움직이는 응원 문화는 미국 야구의 방향성과는 맞지 않았던 것이다. 북이나 나팔은 군중의 리듬을 유도하는 도구지만, 미국의 팬들은 그것을 필요로 하지 않았다.

3. 응원단의 부재와 구단 운영 방식

미국의 프로야구팀은 대부분 민간 자본에 의해 운영되며, 팬 서비스보다 경기 자체의 품질과 상업성에 초점을 맞춘다. 한국이나 일본처럼 응원단을 공식적으로 고용하거나, 관중의 응원 스타일을 조율하는 일은 드물다. 일부 구단에서는 지역 밴드를 초청해 음악을 연주하게 하기도 하지만, 이것은 어디까지나 쇼 형태이지 응원의 일환으로 진행되지는 않는다. 이처럼 구단 운영의 철학 자체가 응원 방식의 차이를 만든다.

4. 기악 응원에 대한 규제와 관중 경험의 차이

미국 메이저리그 구장에서는 큰 소리를 유발하는 악기나 도구를 반입하는 것이 금지되거나 제한되어 있다. 이는 다른 관중에게 불편을 줄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나팔이나 북과 같은 도구는 주변 관객의 몰입을 방해할 수 있다고 간주되며, 따라서 구장 내 질서를 위해 금지되기도 한다. 이러한 규제는 미국 스포츠 관람 문화에서 ‘서로 배려하며 즐긴다’는 원칙을 반영하는 것이다.

5. 음향보다 ‘화면과 이벤트’에 집중하는 미국식 팬서비스

미국 야구장에서는 관중의 시선을 끌기 위해 북이나 나팔 대신 다양한 시청각적 장치를 활용한다. 경기 중간에 펼쳐지는 디지털 화면 이벤트, 팬 서비스 게임, 카메라 줌인 이벤트 등이 그 예다. 응원은 팬의 몫이 아니라 경기장의 연출팀이 책임지는 또 다른 쇼의 일부로 구성된다. 이는 북소리보다는 시각적 요소가 더 중요하다는 인식을 반영한 결과다.

6. 야구 외 다른 스포츠와의 영향

미국에서는 야구 외에도 미식축구, 농구, 아이스하키 등 다양한 프로스포츠가 대중적으로 인기를 끌고 있다. 이들 종목 역시 ‘조용한 집중’과 ‘개별 응원’을 지향하는 문화가 강하다. 따라서 스포츠 전반에 걸쳐 북이나 나팔 같은 도구보다는 개별 행동과 디지털 기술이 응원의 핵심 도구가 되었다. 이러한 관점이 야구에도 그대로 반영된 것이다.

결론: 응원의 방식은 문화의 차이

미국 야구장에서 북이나 나팔이 없는 이유는 단순한 규칙이나 운영상의 차이 때문만이 아니다. 그것은 미국 사회가 오랜 시간에 걸쳐 형성한 개인 중심의 문화, 스포츠에 대한 관람자적 태도, 그리고 다른 사람의 감상권을 존중하는 배려에서 비롯된 것이다. 반면 일본이나 한국은 집단적 일체감과 열정적 퍼포먼스를 중시하는 문화 속에서 응원단이 발달해 왔다. 각국의 스포츠 응원 방식은 단순한 차이를 넘어서, 그 사회가 무엇을 중요하게 여기는지를 보여주는 하나의 문화적 지표라고 할 수 있다.